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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에서 현충사까지 도보여행 이야기

안녕하세요?

이번 글은 전에 썼던 온양온천역에서 곡교천변 은행나무길까지의 도보여행 이야기에 이어서 곡교천변 은행나무길에서 이순신 장군님의 현충사까지의 도보여행 이야기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온양온천역에서 곡교천변 은행나무길까지의 여정은 전에 쓴 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혹시 그 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 글을 눌러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19/12/29 - [여행] - 아산 온양온천역에서 곡교천변 은행나무길까지 도보 여행 이야기

 

현충사는 개인적으로 두번째 방문하는 곳인데요.

2003년 봄에 잠시 들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현충사가 상당히 넓었다는 기억과 나무들이 많았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또 현충사에 별로 볼 게 없었다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위패를 모신 사당(?) 하나 밖에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단체가 함께 간 여행의 마지막 코스여서 그냥 대충 보고 왔던 기억도 납니다.

이번에 가 보니 이순신 장군님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는 멋진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 현충사 사당에서 혼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도 있어서 참 알찬 관람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글로 천천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이 곳 현충사의 좋은 점은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입니다.

입장료가 무료였다는 점은 2003년 방문했던 기억에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간을 흐름을 따라 현충사의 곳곳을 사진과 함께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녀온 지 한 달쯤 지나서 기억이 좀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잘 떠올려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출발합니다.

 

 

 

1. 곡교천변에서 현충사로 출발

 

 

곡교천변 은행나무길에서 현충사로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은행나무길 바로 근처일 줄 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멀었습니다.

그리고 현충사 초입  도로에서 실제 현충사 입구까지 좀 멀었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걸으니 걸을만했습니다.

현충사 입구 방향으로 좀 들어오니 '백암 1리'라는 마을 표지석이 보였습니다.

거기에 '이순신 장군께서 자라오신 마을'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신 곳은 서울이지만 유년시절과 중년시절까지 살았던 곳은 이곳 아산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살았던 마을 주민들은 자랑스러워할 만합니다.

드디어 입구가 보입니다.

 

 

 

 

2. 현충사 입구와 정려, 아름다운 나무들

 

 

현충사 내부에는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생가와 훈련하던 장소, 사당 등이 있습니다.

사적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이렇게 붉게 물든 나무들이 많습니다.

맨 오른쪽 사진은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입니다.

박물관과 비슷하게 되어 있고 이순신 장군님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충사로 들어가는 진짜 입구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또 이렇게 넓은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현충사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나무들도 예쁘고 길도 예쁘지만 한편으로는 땅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이렇게 넓은 땅을 차지하여 현충사를 만들어 놓은 걸 이순신 장군님께서 아시면 좋아하실까요? 

 

 

 

 

 

어디를 가든 이렇게 예쁜 단풍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11월 말쯤이었는데도 여전히 나뭇잎들이 나뭇가지에 잘 붙어있었습니다.

 

 

 

 

 

조금 걷다 보면 오른편에 '정려'라는 것이 보입니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게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현판입니다.

이런 것 마을 앞에 걸어놓았다고 하네요.

당연히 이순신 장군님 것도 있습니다.

 

 

 

 

 

입구에서 현충사 사당 중간쯤 왔을 때 커다란 소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굉장히 큰 소나무였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한 초등학교에서 뽑아와서 옮겨 심은 나무였습니다.

 

지금부터는 저의 상상력이 동원된 추측입니다.

현충사를 돋보이게 하려고 가지고 왔겠죠?

그 초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 중에 갑자기 사라진 저 소나무를 그리워한 학생은 없었을까요?

이순신 장군님을 기리기 위해 가지고 온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이순신 장군님께서 아셨다면 좋아하셨을까요?

1970년대 시대적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멋지게 꾸며라!"

"네 알겠습니다."

 

위의 대화와 의견은 지극히 저만의 추측입니다.

저 소나무가 초등학교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3. 현충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이순신 장군님의 무예를 닦던 장소

 

 

1) 맨 처음 숙종 임금께서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이순신 순국 108년이 되던 해에 이곳에 사당을 짓게 하고 '현충사'라는 이름을 내리심.

2)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으로 인해 사라지게 됨.

3) 1932년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가 주관하여 여러 사람들이 정성과 돈을 모아 다시 현충사를 세움

4)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음

5) 2011년에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개관함.

 

 

 

 

 

그 당시 시대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비석입니다.

'성역화'

그래서 이렇게 현충사 전체 땅이 넓고 길고 무척 큼직큼직했나 봅니다.

 

 

 

 

 

이순신 장군님께서 무예를 닦으며 훈련했다고 알려진 장소입니다.

그곳에는 50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저 나무는 이순신 장군님을 직접 뵌 적이 있겠네요.

현재 건강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나뭇가지에 은행 열매를 맺고 있는 게 아름답게 보입니다.

 

 

 

 

4. 이순신 장군님 고택과 감나무

 

 

이순신 장군님께서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생활하셨던 고택입니다.

1960년대까지 이순신 장군님의 후손들이 실제로 살았다고 하네요.

조상님 중에 이순신 장군님이 계시면 어떤 기분일까요?

고택은 무척 단정하였고 아담하였습니다.

 

 

 

 

 

 

감나무에 감이 열려있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제 사진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직접 봤을 때 보단 훨씬 못 미치네요.

그 당시 감나무를 봤을 때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감나무는 고택 담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단풍 감상 한번 해보시죠.

고택에서 현충사 사당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멋진 단풍이 펼쳐져 있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것 좀 보세요.

어쩜 저렇게 채색을 잘할 수 있을까요?

어떤 화가가 그려도 저렇게 그리지는 못하겠죠?

색깔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올해는 가을이 이미 지나갔으니 내년 2020년 가을에 꼭 한번 오셔서 저 아름다운 색깔을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5. 현충사

 

 

드디어 진짜 현충사 입구까지 왔습니다.

이 곳은 1967년에 조성된 곳이고 1932년에 동아일보가 주관하여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든 현충사는 근처에 건물만 있습니다.

잠시 후에 그곳에 대한 내용도 나옵니다.

 

 

 

 

 

드디어 진짜 현충사로 들어갔습니다.

사당을 높게 지어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합니다.

다 올라가서 정면을 쳐다보니 이순신 장군님의 영정(초상화)이 보입니다.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에 대한 내용은 맨 아래에 글로 남기겠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뒤를 돌아 내려오려고 하니 사진과 같은 장관이 보였습니다.

아산 시내가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은 항상 아산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내가 살던 동네에 당신을 넋을 기리기 위한 이러한 공간이 있다는 걸 아실까요?

 

 

 

 

 

이제 아래로 내려가려는 도중에 문살에 눈이 갔습니다.

제가 전에 봤던 창덕궁 인정전의 문살과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현충사는 1967년에 지어져서 좀 다를까요?

창덕궁 인정전의 문살이 좀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혹시 창덕궁 인정전의 문살이 궁금하시면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19/10/29 - [여행] - 창덕궁 관람,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써 보기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6. 구 현충사 (1932년에 만들어진 현충사 사당)

 

 

구 현충사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단풍들과 다양한 나무들로 참 예뻤습니다.

조금 내려가니 구 현충사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맨 아래 사진에 멀리 구 현충사가 보입니다.

 

 

 

 

 

현재 현충사보다 훨씬 작은 규모입니다.

1932년에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지어진 것이라서 크게 짓기가 어려웠겠죠?

하지만 저는 구 현충사가 훨씬 정감이 가고 마음에 듭니다.

왠지 이순신 장군님께서도 소박한 구 현충사를 더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눈치를 봐가면서 모금활동으로 지어진 '현충사'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당의 역할을 하지 않아 내부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구 현충사의 사진 몇 장 더 올려봅니다.

현충사에 가시면 이 곳도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7.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이순신 장군님의 생애, 업적, 임진왜란 당시의 상세한 전황 등 다양한 자료와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세하게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상세하게 알려줘서 이해하기 쉬웠고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영정을 다시 보며 장군님의 기품을 느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자료였는데 이순신 장군님 어머님께서 무척 부자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서 편안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셨을 텐데 그런 삶을 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택.

존경스럽습니다.

 

 

 

 

 

칼에 새긴 문장을 보십시오.

왜군에 맞서는 기개와 위엄이 느껴집니다.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현충사를 모두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역사 인물 중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아마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1위를 다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님의 훌륭한 업적이 많다는 뜻이겠죠?

그 업적이 단지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무찌른 전투 수행 능력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그 문제에 직면하는 태도 또한 우리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적은 병력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전쟁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모습.

전쟁 중에도 항상 기록하여 남긴 난중일기.

모함을 받아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모습.

어머님에 대한 효심.

그리고 백의종군.

참으로 본받을 점이 많은 인물이십니다.

 

역사의 만약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현충사 이순신 장군님 영정 앞에서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님 같은 분이 계시지 않아서 왜군의 보급을 끊지 못하여 왜구가 더욱 승승장구하였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왠지 조선의 운명은 끝이 났을 것 같고,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 후 다시 이순신 장군님의 강직한 표정의 영정을 쳐다보니 마음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겠지요?

이순신 장군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알고, 어느 순간 무언가에 대해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 문득 이순신 장군의 삶의 모습을 떠올려  

현명한 판단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무척 만족할 듯합니다.

이것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죠?

현충사에서 느꼈던 감정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이순신 장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아이들이 있다면 꼭 한번 같이 와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사당뿐만 아니라 기념관도 잘 만들어져 있어서 이순신 장군님 삶에 대해 차근히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가족과 함께 오셔서 많은 대화와 추억을 만드시길 바라며 현충사 이야기를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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